연예, 패션 / / 2022. 2. 4. 00:40

모가디슈 실화 내용에 대해 알려준다.

1991년 소말리아 모가디슈 내전에서 살아남은 남북한 사람들의 실화가 감동을 전했습니다. 작년 11월 경에 SBS에서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영화 ‘모가디슈’의 바탕이 된 1991년 실제 사건을 다뤘는데요. 한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모가디슈 실화 내용에 대해 알려준다.

 

 

모가디슈 영화 내용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으로, 2021년 7월 28일 개봉하였는데요.

영화는 대한민국이 유엔 가입을 위해 북한과 경쟁을 벌이던 1991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당시 소말리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이 속에서 남북한이 펼치는 치열한 외교전의 실상을 담아냈다. 이야기의 무대는 소말리아지만 촬영은 모두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100% 해외 로케이션으로 진행됐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 남한에서는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안기부 출신의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이, 북한에서는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 UN 회원국 가입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던 중 모가디슈에서는 바레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시위가 내전으로 확산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민국 대사관은 기본적인 자원은 물론 타국과의 연락까지 끊긴 채 소말리아에 고립되는데요.

 

북한 역시 대사관을 침탈당하고 우호국인 중국 대사관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되자, 남한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이후 남북한은 오직 모가디슈를 탈출한다는 목표 하나로 힘을 합치고, 긴장감이 연속되는 동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가디슈 실화 내용

1990년 12월 경상북도 경주, 먼 길을 떠나려는 여자 두남 씨가 있었습니다. 두남 씨가 먼 길을 떠나려는 이유는 남편 때문인데요. 비행기를 타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출발해 스위스, 아프리카 케냐를 거쳐 2박 3일 만에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도착했다. 남편은 소말리아 한국 대사관 직원으로 반년만 재회였습니다.

얼마 후 부부는 갑작스러운 대포소리와 총소리에 놀랐습니다. 아이디드 장군이 이끄는 반군과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 사이 내전이 시작됐고, 대통령 궁과 대사관이 있는 모가디슈가 지옥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장 강도들이 총을 들고 판을 치는 무법천지. 부부는 강신성 대사의 배려로 대사관저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무장강도와 무장 경비 사이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나라 대사들은 이미 떠났고, 한국에 연락할 통신 수단도 끊겼습니다. 강대사는 상인에게서 모레 마지막으로 오는 케냐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받고 큰돈을 줬지만 사기였는데요. 대사 일행은 모가디슈 공항 관제탑을 통해 케냐 공항 관제탑을 거쳐 한국으로 도움을 청할 묘안을 냈고, 내일 구조기가 도착한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약속대로 비행기는 도착했지만 공항 문이 열리지 않아 강대사 일행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구조기는 이탈리아 비행기였고, 교신 중 착오가 생긴 것이죠. 강대사 일행은 다시 관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 대사관 일행 14명과 마주쳤습니다. UN가입 문제로 남북 갈등이 첨예하던 때 북한 대사 일행은 이미 강도들에게 털려 무작정 공항에 와 있던 것이죠.

강대사는 무장 경비가 있는 대사관저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북한 사람들은 쌀 3포대와 부식을 가져왔는데요. 강대사는 함께 식사 후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자고 제안했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는 길에는 대통령궁이 있어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이탈리아 대사를 만나 남북한 21명을 위한 비행기를 부탁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는 적십자 비행기 한 대를 겨우 마련했다며 좌석이 8자리밖에 없으니 한국 사람들부터 대피하라고 했지만 강 대사는 제발 21명 모두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는 군 수송기를 마련했고 이번에는 21명 모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와야 하는 위기였는데요. 차 4대가 이슬람 예비 시간에 이동하기로 했고, 3대는 승용차였지만 1대는 승합차로 군인들의 타깃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 승합차 운전을 두남씨 남편이 맡기로 했지만 북한 무전수가 운전하겠다고 해 바꿨습니다. 그렇게 차 4대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는 길 10분 기도시간이 지나자 총알이 날아들었고, 북한 무전수는 가슴에 총을 맞고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해 문이 열리지 않자 강대사는 차에 꽂혀 있던 태극기를 들고뛰면서 “우리는 한국 외교관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북한 외교관도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잠시 후 이탈리아 대사관 문이 열렸고, 총을 맞은 무전수는 사망했는데요. 무전수가 운전대를 놓았더라면 뒤에 오던 차량까지 많은 사람들이 위험했던 상태였죠. 그렇게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 20명은 사흘 만에 반군과 정부군이 휴전하며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비행기가 도착하자 수많은 소말리아 사람들도 비행기에 타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공항은 아비규환이 됐고 자칫 비행기를 놓칠까 아찔한 상황에서 다행히 20명 모두 비행기에 탔고 3시간 뒤 케냐 공항에 착륙했는데요. 14일간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지옥에서 빠져나온 남북한 사람들은 아쉽게도 더 함께하지 못하고 바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허가 없이 만나면 불법이기 때문이죠.

85세가 된 강대사는 30년이 지날수록 그날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더 선명해진다며 통일이 되면 30년 전 북한 외교관과 그때 만난 아이들부터 찾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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